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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의 대표작,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다시 읽다

seolcho 2025. 2. 19. 18:37

 폴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경우 흔히 갖게 마련인 신랄함이나 당혹감이 아니라 조심성에 가까운 차분함을 가지고, 좌절로 얼룩진 거울 속의 얼굴을 서른아홉 해로 나누어 보았다. 얼굴의 음영을 두드러져 보이게 하고 주름을 더 깊어 보이게 하기 위해 자신이 손가락 두 개로 잡아당기는 그 탄력 없는 살갗이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 아가씨의 대열에서 아줌마의 대열로 마지못해 넘어가고 있는, 외모에 몹시 신경을 쓰는 또 다른 폴의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로서는 그런 모습이 낯설었다. 그녀가 이렇게 거울 앞에 앉은 것은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였으나, 정작 깨달은 것은 사랑스러웠던 자신의 모습을 공격해 시나브로 죽여 온 것이 다름 아닌 시간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그녀는 빙긋 웃음이 나왔다. 로제는 9시에 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7시였다. 시간은 충분했다. 침대에 길게 누워 두 눈을 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시간, 긴장을 풀 시간, 휴식을 취할 시간. 하지만 저녁마다 반드시 휴식을 취해야 할 만큼 고단하게, 낮 동안 자신이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몰두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 창문에서 저 창문으로 배회하게 만드는 이 불안정한 무기력이 어떤 것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이면 느끼곤 했던 무기력이었다.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첫 부분 (민음사 - 김남주 번역)


1. 프랑수아즈 사강: 시대를 초월한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Françoise Sagan, 1935~2004)은 20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본명은 프랑수아즈 콰레(Françoise Quoirez)이며, 18세의 나이에 첫 소설 Bonjour Tristesse (슬픔이여 안녕)를 발표하며 일약 스타 작가로 떠올랐다. 사강은 감각적이고 세련된 문체로 현대인의 사랑과 내면의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사강의 작품은 젊은이들의 방황, 불안, 사랑과 자유를 주제로 삼아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여성 캐릭터들의 독립적이고 복잡한 감정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점이 그녀의 문학적 특징이다. 그녀는 인생을 자유롭게 살았으며, 빠른 자동차, 도박, 명성 속에서 거침없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예리한 시선을 유지했다.

 

2.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성숙한 사랑과 현실의 괴리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Aimez-vous Brahms...)는 1959년에 출간된 사강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사랑과 고독, 나이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사랑의 감정이 반드시 행복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줄거리

소설의 주인공인 폴(Paule)은 서른아홉 살의 독립적인 여성으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며 혼자서도 충분히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변호사이자 자유분방한 연인인 로제(Roger)와 오랜 기간 연애를 지속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다른 여자들을 만나며 폴에게 확신을 주지 않는다.

그런 그녀 앞에 젊고 순수한 시몽(Simon)이 나타난다. 시몽은 폴보다 14살이나 어린 스물다섯 살의 남자로, 그녀에게 진심 어린 사랑을 고백한다. 처음에는 그의 애정 표현이 부담스러웠던 폴이지만, 점점 그의 진실한 감정에 이끌리며 로제와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폴은 결국 시몽과의 관계를 지속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다시 로제의 곁으로 돌아간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폴은 브람스의 음악을 들으며,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없었던 자신의 감정을 되새긴다. 이 장면은 사랑이 항상 행복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3. 주요 테마와 작품의 의미

1) 사랑과 현실의 괴리

사강은 이 작품을 통해 사랑이 반드시 기쁨이나 안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폴은 로제와 함께할 때 안정감을 느끼지만, 진정한 행복을 얻지 못한다. 반면, 시몽과의 관계에서는 설렘을 느끼지만 사회적 현실과 자신의 내면적 두려움 때문에 끝내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는 사랑이 때로는 선택의 문제이며, 동시에 필연적으로 상처를 동반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2) 여성의 독립과 내면의 갈등

폴은 경제적으로 독립적이고 성공한 여성이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연인 로제의 확신 없는 태도에 휘둘린다. 이는 1950~60년대 당시 여성들이 직업적으로는 자립했지만,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전통적인 관계의 틀 안에서 고민해야 했던 현실을 반영한다. 사강은 폴의 복잡한 감정을 통해 현대 여성의 고독과 불안을 섬세하게 조명한다.

3) 음악과 감정의 연관성

소설의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브람스의 음악은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브람스의 선율은 폴의 내면을 반영하며, 그녀가 느끼는 감정적 갈등과 애수를 상징한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에서 브람스의 음악을 들으며 끝나는 장면은, 사랑이 남긴 깊은 여운과 고독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4.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문학적 가치

이 소설은 사강이 보여준 가장 성숙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녀는 단순한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철학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그녀의 문체는 단순하면서도 세련되었고, 인물들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독자들이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1961년 이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더욱 큰 인기를 얻었다. 잉그리드 버그먼과 이브 몽탕이 주연을 맡아, 원작이 가진 감성과 분위기를 영화에서도 그대로 전달했다. 이를 통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문학뿐만 아니라 영화사에서도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5. 결론: 사강 문학의 매력

프랑수아즈 사강은 젊은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인간관계와 사랑, 그리고 삶의 허무함을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러한 사강 문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시대를 초월한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오늘날에도 사강의 작품은 여전히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사랑의 의미와 삶의 복잡성을 되새기게 한다. 그녀의 문학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인간 내면의 깊은 고독과 갈등을 그려내며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