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한국어 번역 비교 – 원문의 느낌을 살린 출판사는?

2025. 2. 21. 19:10BOOK

일본 문학 작품은 번역자에 따라 문장의 뉘앙스와 표현 방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중 번역 차이가 두드러지는 부분을 중심으로 각 출판사의 번역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원문
 私は、その男の写真を三葉、見たことがある。
 一葉は、その男の、幼年時代、とでも言うべきであろうか、十歳前後かと推定される頃の写真であって、その子供が大勢の女のひとに取りかこまれ、(それは、その子供の姉たち、妹たち、それから、従姉妹たちかと想像される)
庭園の池のほとりに、荒い縞の袴をはいて立ち、首を三十度ほど左に傾け、 醜く笑っている写真である。醜く? けれども、鈍い人たち(つまり、美醜などに関心を持たぬ人たち) は、面白くも何とも無いような顔をして、
 「可愛い坊っちゃんですね」
 といい加減なお世辞を言っても、まんざら空お世辞に聞えないくらいの、謂わば通俗の「可愛らしさ」みたいな影もその子供の笑顔に無いわけではないのだが、しかし、いささかでも、美醜に就いての訓練を経て来たひとなら、ひと目で、すぐ、
 「なんて、いやな子供だ」
と頬を不快そうに歪め、毛虫でも払いのける時のような手つきで、その写真をほうり投げるかも知れない。
 まったく、その子供の笑顔は、よく見れば見るほど、何とも知れず、イヤ な薄気味悪いものが感じられて来る。 だが、それは、笑顔でない。 この子は、少しも笑ってはいないのだ。 その証拠には、この子は、両方のこぶしを固く握って立っている。人間は、こぶしを固く握りながら笑えるものでは無いのである。猿だ。猿の笑顔だ。 ただ、顔に醜い皺を寄せているだけなのである。「皺くちゃ坊っちゃん」 とでも言いたくなるくらいの、まことに奇妙な、そうして、どこかけがらわしく、へんにひとを ムカムカ させる表情の写真であった。私はこれまで、こんな不思議な表情の子供を見た事が、いちども無かった。

 

출판사별 번역 비교

1. 나는 그 사나이의 사진 석 장을 본 적이 있다.

 한 장은 그 사나이의 유년 시절이라고나 해야 할까, 열 살 전후로 추정되는 때의 사진인데, 굵은 줄무늬 바지 차림으로 여러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그 아이의 누나들, 누이동생들, 그리고 사촌 동생들로 생각된다.) 정원 연못가에 서서 고개를 왼쪽으로 삼십 도쯤 갸우뚱 기울이고 보기 흉하게 웃고 있다. 보기 흉하게? 아니다. 둔감한 (미추 따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가는 말로 “귀여운 도련님이군요.”라고 적당히 사탕발림을 해도 괜한 공치사로 들리지는 않을 만큼, 말하자면 통속적인 ‘귀염성’ 같은 것이 그 아이의 웃는 얼굴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추에 대한 감식안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언뜻 보기만 해도 몹시 기분 나쁘다는 듯이 “정말 섬뜩한 아이군.” 하면서 송충이라도 털어내듯 그 사진을 내던져 버릴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은 자세히 보면 볼수록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섬뜩하고 으스스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다. 애당초 그건 웃는 얼굴이 아니다. 이 아이는 전혀 웃고 있지 않다. 그 증거로 아이는 양손을 꽉 쥐고 서 있다. 사람이란 주먹을 꽉 쥔 채 웃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은 원숭이다. 웃고 있는 원숭이다. 그저 보기 싫은 주름을 잔뜩 잡고 있을 뿐이다. ‘주름투성이 도련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질 만큼 정말이지 괴상한, 왠지 추하고 묘하게 욕지기를 느끼게 하는 표정의 사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괴상한 표정의 소년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민음사, 김춘미 번역

 

2. 나는 그 남자의 사진을 석 장, 본 적이 있다.

 한 장은 그 남자의 유년 시절이랄까, 한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여자들 (그의 누나와 동생, 사촌들로 짐작된다)에게 둘러싸여, 정원 연못가에서 투박한 줄무늬 하카마를 입고 서서, 고개를 삼십 도 정도 왼쪽으로 갸웃한 채 추하게 웃고 있다. 추하게? 하지만 둔한 사람들 (추하고 아름다운 것 따위에 별 관심 없는 사람들)이 그게 뭐 대수냐는 얼굴로 “귀여운 도련님이네요”라고 적당히 입에 발린 소리를 하더라도, 아주 빈말로 들리지는 않을 만큼의, 소위 ‘귀염성’ 같은 구석이, 그 아이의 웃는 얼굴에 일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추하고 아름다운 것에 길이 든 사람이라면, 첫눈에 바로 “참 애가 얄궂게도 생겼군” 하며 몹시 언짢은 듯 중얼거리고 송충이라도 털어내는 듯한 손놀림으로 그 사진을 내동댕이쳤을지도 모른다.

 과연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어딘가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애초에 그건 웃는 얼굴이 아니다. 이 아이는 조금도 웃고 있지 않다. 그 증거로 아이는 양 주먹을 꽉 쥐고 서 있다. 인간이라면 주먹을 꽉 쥐고서는 웃을 수 없는 법이다. 원숭이다. 원숭이가 웃는 얼굴이다. 그저 얼굴에 추한 주름을 짓고 있을 뿐이다. ‘쭈그렁 도련님’이라 부르고 싶을 만큼 참으로 기괴한, 어딘가 추하고 묘하게 사람을 언짢게 하는 표정의 사진이었다. 나는 여태껏 이런 묘한 표정의 아이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코너스톤, 장하나 번역

 

3. 나는 그 남자의 사진을 세 장 본 적이 있다.

 한 장은 그 남자의 어린 시절이라고 해야 할까. 나이가 열 살 정도로 짐작되는 사진인데, 그 어린아이가 굵은 줄무늬 바지를 입고 여러 여자에게 둘러싸여 (그 아이의 누나, 여동생, 그리고 사촌 동생들로 보인다.) 정원 연못가에 서서 고개를 왼쪽으로 30도쯤 기울인 채 보기 흉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다. 보기 흉하게? 하지만 둔한 사람들 (미적인 것이나 추한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그저 별 감정 없이 “귀여운 도련님이네요.”라고 대충 입에 발린 말을 해도 그다지 속없는 말로는 들리지 않을 만큼, 이른바 통속적인 ‘귀염성’ 같은 구석이 그 얼굴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아름다움과 추한 것에 대한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언뜻 보기만 해도 금세 “이 아이 정말 별로야.”라고 몹시 기분 나쁘다는 듯 중얼거리고 벌레 따위를 털어 내듯 그 사진을 내던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은 정말 들여다보면 볼수록 뭐라고 딱히 설명할 수 없는 음산하고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사실 그건 애당초 웃는 얼굴이 아니다. 그 아이는 전혀 웃고 있지 않다. 아이는 양쪽 주먹을 꽉 쥐고 서 있다. 사람은 주먹을 꽉 쥔 채 웃지 않는 법이다. 그건 원숭이다. 원숭이가 웃고 있는 모습이다. 그저 보기 싫은 주름을 얼굴에 만들고 있는 것이다. ‘주름이 가득한 도련님’이라 말하고 싶을 만큼 꽤나 괴상하면서도 추하고, 희한하게 욕하고 싶다고 느끼게 만드는 표정의 사진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이상한 표정의 소년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생각뿔, 안영준 번역

 

4. 나는 그 남자의 사진 석 장을 본 적이 있다.

 한 장은 그 남자의 어린 시절이라고 해야 할까, 열 살 전후로 추정되는 모습의 사진인데, 어린 꼬마가 여러 명의 여자들에게 둘러싸여(그들은 그 꼬마의 누나들, 여동생, 그리고 사촌들로 보인다) 정원에 있는 연못가에 거칠게 짠 하카마〔일본 남자들이 입는 주름 잡힌 바지〕를 입고 서서, 고개를 30도 정도 왼쪽으로 기울이고 보기 흉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다. 보기 흉하게? 하지만 약간 둔한 사람들(말하자면 아름다움과 추함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재밌다고도, 어떻다고도 특별한 느낌을 받지 못한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저 “귀여운 아이네요” 하고 적당히 말할지 몰라도, 그 말이 그저 지나가는 인사치레로만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귀여운’ 구석이 이 꼬마의 웃는 얼굴에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약간이나마 아름답고 추함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눈에 “아이고, 이 아이는 참 기분 나쁜 얼굴이네” 하고 불쾌감을 내뱉고는 송충이라도 털어낼 때처럼 팔을 휘둘러, 그 사진을 뿌리쳐버릴지 모른다.

 정말이지 이 꼬마의 웃는 얼굴은 자세히 보면 볼수록 왠지 모르게 음침한 느낌을 준다. 아무리 봐도 이건 웃는 얼굴이 아니다. 이 아이는 전혀 웃고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양손 주먹을 꽉 움켜쥔 이 아이의 자세다. 인간이란 이렇게 두 주먹을 꽉 움켜쥐고서 웃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원숭이다. 원숭이의 웃는 모습이다. 단지 얼굴에 보기 흉한 주름을 잡고 있는 것이다. ‘잔뜩 찡그린 꼬마’라고도 할 만한 실로 묘한, 부정탄, 보는 사람의 기분을 꺼림칙하게 만드는 표정의 사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이상한 표정을 가진 꼬마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문예출판사, 오유리 번역

 

5. 나는 그 사내의 사진을 석 장 본 적이 있다.  한 장은 사내의 유년 시절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열 살 전후로 추정되는 시기의 사진이다. 전원의 연못가에, 굵은 줄무늬 기모노 바지를 입은 모습으로 수많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그 아이의 누나들, 여동생들, 그리고 사촌 누이들이라고 짐작된다) 서 있는 그 아이는 고개를 30도쯤 왼쪽으로 기울인 채 볼썽사납게 웃고 있다. 볼썽사납게? 그러나 둔감한 사람들(즉 아름다움과 추함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흥미로워하지도 않고 별다른 느낌도 없을 표정이다.

 ⌜귀여운 도련님이네요.⌟

 그렇게 적당히 칭찬을 하더라도 그 말이 전부 입발림으로 들리지는 않을 만큼, 그 아이의 웃는 얼굴에 소위 통속적인 <귀여움>의 흔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소나마 아름다움과 추함에 관한 훈련을 거친 사람이라면 한 번 보고도 이내, 

 ⌜허 참, 징그럽게 생겼군.⌟

 하고 몹시 언짢게 중얼거리고는, 송충이라도 떨어낼 때처럼 사진을 휙 내던질지도 모른다.

 아이의 웃는 얼굴은 자게시 보면 볼수록 뭐라 말할 수 없는 불길함과 스산함이 느껴진다. 애당초 웃는 얼굴이 아니다. 그 아이는 사실 조금도 웃고 있지 않다. 인간은 주먹을 꽉 쥐고서는 웃지 못하는 법이다. 원숭이다. 원숭이의 웃는 얼굴이다. 그저 얼굴에 볼썽사나운 주름을 짓고 있을 뿐이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도련님>이라고 하고 싶을 만큼 정말 기묘하고, 어딘지 모르게 너저분하며, 유난히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표정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야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열린책들, 김난주 번역

 

민음사 (김춘미 번역) 이 아이는 전혀 웃고 있지 않다. 그 증거로 아이는 양손을 꽉 쥐고 서 있다. 사람은 주먹을 꽉 쥔 채 웃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은 원숭이다. 웃고 있는 원숭이다.
코너스톤 (장하나 번역) 이 아이는 조금도 웃고 있지 않다. 그 증거로 아이는 양 주먹을 꽉 쥐고 서 있다. 인간이라면 주먹을 꽉 쥐고서는 웃을 수 없는 법이다. 원숭이다. 원숭이가 웃는 얼굴이다.
생각뿔 (안영준 번역) 사실 그건 애당초 웃는 얼굴이 아니다. 그 아이는 전혀 웃고 있지 않다. 아이는 양쪽 주먹을 꽉 쥐고 서 있다. 사람은 주먹을 꽉 쥔 채 웃지 않는 법이다. 그건 원숭이다. 원숭이가 웃고 있는 모습이다.
문예출판사 (오유리 번역) 아무리 봐도 이건 웃는 얼굴이 아니다. 이 아이는 전혀 웃고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양손 주먹을 꽉 움켜쥔 이 아이의 자세다. 인간이란 이렇게 두 주먹을 꽉 움켜쥐고서 웃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원숭이다. 원숭이의 웃는 모습이다.
열린책들 (김난주 번역) 그 아이는 사실 조금도 웃고 있지 않다. 인간은 주먹을 꽉 쥐고서는 웃지 못하는 법이다. 원숭이다. 원숭이의 웃는 얼굴이다. 그저 얼굴에 볼썽사나운 주름을 짓고 있을 뿐이다.

 

번역 비교 분석

1. '웃고 있지 않다' 표현 차이

  • '전혀 웃고 있지 않다' (민음사, 생각뿔, 문예출판사): 부정의 강도를 강조한 표현.
  • '조금도 웃고 있지 않다' (코너스톤, 열린책들): 보다 직설적인 표현으로 원문과 가까움.
  • '애당초 웃는 얼굴이 아니다' (생각뿔): 의미를 강조하면서도 원문의 구조를 다소 변형.
  • '아무리 봐도 이건 웃는 얼굴이 아니다' (문예출판사): 구어체적인 표현을 활용하여 자연스럽게 변형.

2. '원숭이' 관련 표현 차이

  • '그것은 원숭이다. 웃고 있는 원숭이다.' (민음사): 원문의 직역에 충실한 표현.
  • '원숭이다. 원숭이가 웃는 얼굴이다.' (코너스톤, 열린책들): 반복적인 표현을 활용하여 원문의 느낌을 최대한 유지.
  • '그건 원숭이다. 원숭이가 웃고 있는 모습이다.' (생각뿔): 좀 더 자연스럽게 변형하여 가독성을 높임.
  • '원숭이다. 원숭이의 웃는 모습이다.' (문예출판사): 다소 부연 설명이 추가되어 원문과 거리감이 있음.

3. 문체의 차이

  • 민음사, 열린책들: 원문을 직역하면서도 문장의 흐름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다듬음.
  • 코너스톤, 생각뿔: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원문과의 유사성을 강조.
  • 문예출판사: 구어체적인 요소를 추가하여 가독성을 높임.

 

원문에 가장 충실한 번역은?

  • 가장 직역에 가까운 번역: 코너스톤 (장하나 번역)
  • 작가의 문체를 가장 잘 살린 번역: 열린책들 (김난주 번역)
  • 의역이 가장 많은 번역: 문예출판사 (오유리 번역)

 

결론

출판사별 번역은 문체와 뉘앙스에서 차이가 있으며, 독자의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스타일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원문의 직설적인 느낌을 살리고 싶다면 코너스톤 번역을, 문학적인 분위기를 중시한다면 열린책들 번역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의역이 많은 문예출판사 번역은 보다 가독성을 높인 형태를 원하는 독자에게 적합할 수 있습니다. 번역본을 직접 비교해 읽어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는 것이 좋은 독서 경험이 될 것입니다.